아주 바쁘게 보냈지만, 그렇기에 너무 조용하고, 기억에 남는 것이 없는 한 해를 보낸 것 같다.
피로사회에서 바쁜 삶은 사람을 피로하게 하고 깊은 생각을 못하게 하고 자신을 되돌아볼 시간을 제한하게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쉬는 시간에 게임을 하거나 여행을 가는 것 같이 `무언가를 하는 방식`으로는 근본적인 해결이 아니라고 한다.
나는 그럼에도 되돌아 보려고 한다.
내가 이번 해에서 무엇을 보았고, 무엇을 느꼈는지.
작년 초를 생각하면 나는 삶의 무료함을 느끼고 있었다.
다들 나와 같지 않은 마음, 안정감있는 삶. 아니 도태되어 가고 있는 삶에 행복감을 누리는 사람들과 몇년을 함께 지내면서 나 자신도 그렇게 변해가는 것에 환멸을 느꼈다.
나는 서울로 상경했으며, 현재 하고 있는 일도 정도를 걸어서 온 길이 아니다. 대학의 전공을 따르지 않고, 선택한 길이기에 나에게는 한계가 명확함을 인지하고 있었다. 누군가는 4년을 준비하고 좋은 회사를 거쳐가겠지만, 나는 작은 회사에서 2400이라는 숫자를 지니고 시작했다.
적은 숫자가 아닐까 라고 생각했지만 당시 나는 서울 고시원에 살고 있었다. 그것도 내창으로 (내창은 창문이 복도에 있는 것을 말한다. 나는 햇빛을 볼 수 없는 방에 살았다) 버는 돈이 없었기에, 나는 2400이라는 숫자를 받으면서 너무 행복했다.
나도 사회의 일원이 되었구나
2400
이것이 나에게 주어진 숫자구나
나는 현재 4,5년차가 되었고 회사는 3번을 이직했다. 마치 서울에 내리는 소나기처럼. 어디 한 곳에 뿌리내려 꽃을 피우는 것이 아니라, 하수구로 내려가 이리저리 더러운 것들을 닦고 묻혀서 결국에는 서울에서 밀려나지는 않을까 걱정한다.
이것은 나의 언더독 성향이 더 이런 경향을 강하게 만든다.
개발을 하면서 Lisp에 빠져버렸을 때, 나의 커리어패스가 뒤틀어질 것을 예언했다.
개발학원에서 SICP마법사책을 읽고, Scheme을 공부하면서, 이걸로 취직을 하겠다고 학원을 수료하지 않고 뛰쳐나왔을 때.
전혀 Scheme이나 Racket을 쓰는 회사를 찾을 수 없었을 때의 그 어둠은 창문이 없는 고시원에 사는 것보다 더 무서웠다.
결국 Spring을 여차여차 공부해보고 취직을 하고, 공부를 다시하고, 일을 하고 버텼던 것 같다.
수학을 공부하고, 함수형 프로그래밍을 공부하지만
내 마음 속에는 Lisp가 항상 있다.
음식 평론가 황교익은 한 때 최고의 음식은 자장면이라고 뽑았다.
어렸을 때, 가난한 시절 부모님과 함께 먹었던 자장면을 기억하며,
최고의 음식은 맛만으로 평가할 수 없다는 그의 말처럼
나에게 Lisp는 그 시절 나의 악몽같던 시절에
희망과 절망을 동시에 준 도구였다.
다시 돌아와서
나는 컬리라는 회사로 이직했다.
처음으로 사람들이 이름을 아는 회사.
사장님의 이름을 연예인처럼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는 회사.
사장님의 이름을 연예인처럼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는 회사.
부모님이 이름을 안다는 것에 괜히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변화를 두려워하기보다 변하지 못하는 것을 두려워 하는 사람들을 만난다는 것은
나에게 신선했고, 내 자신을 움츠려들게 했다.
왜냐하면
결국 가만히 있어도, 그들과 함께 있으면 변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난 오히려 내가 어떻게 변하는지 소극적으로 바라만 봐야했다.
그동안 나는 해내는 것에 집중했었다.
해야할 것을 바로알고 어떻게 해야 할지, 정말 그들이 잘 쓸 수 있을지를 고민했다.
2400이라는 숫자로 일을 시작했을 때부터
나는 항상 감사했다. 이 감사함은 유저들에게 보답해야 한다고 나는 생각했다.
컬리에서 일하면서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되었다.
무엇을 만들어야 한다고 하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너무 추상적이기에 또 그걸을 알 수 없기에
우리는 개발하기보다는 대화를 하는 사람이 된 것 같다.
신기한 경험이었다.
해야할 일이 있지만 할 수 없는 답답함.
코드 리팩토링, 좋은 코드는 세상을 바꿀까?
컬리에서 일을 하면서 이 말은 좋은 질문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 말은 그렇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
모든 세상은 단순한 말로 표현할 수 없다.
각자의 서비스를 만들기 위해
각자의 팀이 가지는 프로젝트를 마치 자신의 사업처럼 사랑하면서 작업을 해야하며,
서로 함께 만들기 위해
회의하고 언성이 높아지고
회의하고 언성이 낮아지고
회의하고 적막이 흐르고
반복에 반복을 하다보면
개발자는 코드를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꿈을 꾸는 사람들이며
무엇을 만드는지 상상하는 사람들이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개념적으로만 존재하던 개념들의 점점 실체화되고 구조과 완성이 되가는 그 시점부터
좋은 코드, 리팩토링에 대한 지식과 경험이 있으신 분들과 함께라면
상상한 구조를 만들어내는 데에는 마치 뻥 뚤린 고속도로가 펼쳐진 것처럼
정신없이 나아간다.
무엇을 만들지도 모르는 곳에 떨어져서
무엇을 어떻게 만들지 고민하는 순간의 고통을 느낄 때
나는 새로운 세상에 들어왔음을 느꼈다.
2021년에는
더 겸손해지고
더 열심히 공부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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