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의 믿음, 한번의 실수로 모든 것을 잃은 리어왕의 이야기는 남을 불신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자신이 누구인지 다시 새겨보게 하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나의 생각
리어왕은 세명의 딸에게 각각 땅을 나눠주기로 한다. 갈등의 시작은 이미 여기서 시작된다. 왜 땅을 나눠주려하는가. 왜 땅을 삼등분하였는가.리어왕은 이미 처음부터 세 딸에 대해 제대로 보려고 하지 않는다. 이미 결정은 만들어졌고, 딸들은 리어왕을 친송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리어왕 자신은 그럴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나보다. 이제 나눠줘도 자신은 리어왕 그대로 이기 때문에 상관이 없다고 생각했나보다.
당연히 세 딸들이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이 재산을 나눠주면 그 보답으로 무언가를 해줄 것이라 생각했나보다.
리어왕은 그 증거로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말하라 한다. 첫째 딸, 둘째 딸은 리어왕에 대한 사랑을 온갖 수식어를 붙여서 표현한다. 그는 흡족한다.
하지만 막내딸 코딜리어는 거짓을 말하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그대로 말한다.
리어왕은 분노하며 코딜리어에게 주어질 모든 땅을 빼앗고, 시집을 보낸다.
재산을 받은 두 딸은 재산을 받은 시점부터 리어왕을 무시하기 시작한다. 리어왕은 자신이 무슨 일을 저지른 것인지 뒤늦게 깨닫게 되는데...
이 이후의 내용은 굳이 설명하지 않도록 하겠다. 이 책이 비극이라는 점으로 추론하거나, 리어왕은 짧은 글이니 읽어보길 추천한다.
기억에 남는 문장을 말하라 한다면 글로스터가 두 눈을 잃고 하는 말이다.
갈 곳이 없으니 눈도 필요없다. 눈이 있을 땐 넘어졌지.이 말이 계속 머리 속에 맴도는 것이 신기하다. 특이 "눈이 있을 땐 넘어졌지" 라는 말이 신기하다.
눈이 없어서 부축을 받는 존재가 된 글로스터는 눈이 있을 때 넘어졌다는 말을
마치 거짓된 글들을 읽고 그것에 혹해 잘못을 저지른 자신을 되돌아 보는 말일 수도 있고
방향성이 있던 그의 삶에서는 넘어지기도 하고 나아갔겠지만
전의를 상실하였기에 나아가지도 않기에 넘이지지도 않는 다는 말일 수도 있을 것 같다.
셰익스피어의 리어왕에서 나오는 유명한 명언은 아래와 같다
있다고 다 보여주지 말고 안다고 다 말하지 말고 가졋다고 다 빌려주지 말고 들었다고 다 믿지 말고이 내용만을 보면 아첨에 조심하라는 말이다.
내가 리어왕을 보면서 느낀 점은 이것과는 조금 다르다.
자신을 보고 싶은 대로 보고, 누군가를 현혹하려는 것은 인간의 본능임을 셰익스피어는 보여주려는 것 같다.
사랑하고자 하는 것을 바라보고, 믿고 싶은 것을 믿는 것 또한 인간이 하는 실수라고 생각한다.
사실 코딜리어가 아버지를 사랑하는 말을 해주었다면, 이런 비극이 과연 일어났을 것인가.
혹은 딸들에게 재산을 물려줄 때, 끝까지 막아섰던 신하를 버리지 않고 그를 믿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가.
라는 생각을 해본다. 하지만 이 한 편의 연극이 단순한 격언을 말하기 위한 극이라고 하기에는 아깝다고 생각한다.
나는 리어왕의 이야기가 우리의 삶으로 느껴진다.
누군가를 어리석게 믿는 것은 피할 수 없으며 우리가 사랑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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